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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얼을 찾아서 ‘떨잠’

오뜨다이아몬드 2008. 9. 11. 17:14

 

  

많은 여성들이 이미지 변화나 기분 전환을 위해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이 헤어스타일이듯이 옛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도 머리 장식이었다. 과거에는 비녀, 족두리, 뒤꽂이, 떨잠, 머리꽂이, 첩지, 댕기, 비치개 등 머리를 장식하는 장신구만도 상당히 다양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머리 위에 큰머리를 얹는 가체가 유행했는데, 떨잠은 가체에 꽂았던 장식품으로 머리 장식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떨잠은 큰머리나 어여머리의 앞 중심과 양 옆에 꽂은 머리꾸미개로써 ‘떨철반자’라고도 하며, ‘떨잠’이라는 이름은 옥판 위의 떨새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모습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이 때 떨새의 모양은 무척이나 우아하면서도 화려하다. 또한 떨잠 중 머리 앞 중앙에 꽂는 것을 선봉잠이라고 하고 양쪽 좌우 눈높이 정도에 꽂는 반자를 떨잠이라 한다. 이처럼 한사람이 큰머리를 할 때에는 떨잠 장식이 3개가 쓰였다.

떨잠의 재료는 지름 6∼8㎝ 정도 크기의 옥판을 조각하여 판을 만들고, 뒤쪽에는 동으로 만든 납작한 머리꽂이를 붙인다. 앞의 장식은 진주(眞珠)와 산호(珊瑚), 비취(翡翠), 칠보(七寶) 등을 부착하였으며, 4~5㎝ 높이의 용수철을 옥판 사방에 달고 그 위에 칠보로 만든 작은 나비를 달아 나비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모습을 매우 호화롭고 화려하게 했다.

떨잠은 조선시대의 왕비와 세자빈, 후궁, 상궁 및 궁외의 상류층 여성들이 사용했는데, 보통 어여머리를 하고 큰 행사를 치룰 경우에 많이 쓰였다. 최근 방송에서는 사극열풍으로 떨잠을 하고 나오는 배우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원래 떨잠은 궁에서도 큰 행사가 있을 때나 하는 것이고 어염집 부인들도 큰 잔치가 있어야 떨잠을 했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떨잠 사이사이에 박혀있는 것들이 귀한 보석들이고 막대는 도금인지라 웬만큼 부유해서는 떨잠을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에 사는 비빈들이나 공주들이 아닌 경우에는 궁에 자주 드나들 수 있는 왕비의 인척이나 왕족의 부인들만이 주로 사용했다.

떨잠도 계절에 따라 달리 꽂았는데 정월원단(正月元旦) 문안(問安)때는 녹색 당의(唐衣)에 스란치마를 입고 삼작노리개에 니사봉(泥薩鳳) 떨잠이나 옥모란 떨잠을 꽂았다고 전해진다.

머리 가운데 꽂는 선봉잠은 나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중전은 선봉잠을 바로 꽂았지만 후궁들은 선봉잠을 거꾸로 꽂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왕실에서 나비는 곧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분이 낮은 후궁들의 경우에는 선봉잠을 하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떨잠은 처음 명(明)에서 유입되어 개화기 이후 큰머리와 어여머리가 사라짐에 따라 첩지와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