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예절
혼례예절은 본례 의미를 정확히 알고 그 뜻을 새기면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럴때에야 혼례예절이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닌 양가의 결속을 다지며 소중한 인연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혼인이란 서로 믿고 사랑하며 함께 이루어갈 소중한 꿈을 지닌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아름다운 만남이다. 이 만남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때는 공경하고 조심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예(禮)의 정신이 밖으로 드러날 때이다.
옛부터 혼례는 모든 예가 시작되는 예(禮)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한 쌍의 남녀가 서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후에 자식이 태어나면 부자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가족관계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국가적 관계로까지 이어진다고 볼 때, 우리 사회의 총체적 인간관계는 일단 남녀의 분별이 이루어진 후에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남녀 간에 공경하고 삼가며 소중하고 바르게 한 뒤에 친밀해지는 것이 예(禮)의 기본적인 큰 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친밀함의 의미를 잘못 알고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여 예를 잃게 되면 부부관계는 신뢰를 잃게 되고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어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따라서 혼인하여 한 방을 쓰는 부부는 서로 공경하고 삼가며 소중하고 바르게 한 뒤에 친밀해지는 것이 예의 핵심임을 깨닫고, 일상생활 언행에 있어서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혼례예절은 본례 의미를 정확히 알고 그 뜻을 새기면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럴때에야 혼례예절이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닌 양가의 결속을 다지며 소중한 인연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젊은 남녀가 서로 혼인하기로 언약을 하면, 두 집안이 정혼한 뒤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사주단자를 보낸다. 그 다음은 예물함을 보내고 혼인예식을 올린 후, 폐백을 드리는 절차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1. 사주는 왜 보내는가?
사주는 신랑집에서 청혼의 뜻으로 보내는 것이며, 이를 받은 신부집에서 허혼의 뜻으로 좋은 날을 택일하여 보내게 되면 비로소 혼인이 확정된 것이다. 이에 신랑측에서는 신부를 맞이하는 예를 갖추기 위해 성의를 다해 예물을 보내는데 그것이 함(函)이다.
요즈음은 이러한 절차의 의미를 모른 채 함을 보낼 때에 그 속에 뒤늦게 사주를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또한 신랑신부에게 길한 날을 택하고도 예식장 사정에 맞추어 날짜를 바꾸게 되는 경우도 있어 택일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번듯한 예식장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신랑신부에게 의미있는 장소를 적절히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신랑의 생년(生年), 생월(生月), 생일(生日), 생시(生時) 등 기둥이 되는 네 가지를 사주(四柱) 또는 사성(四星)이라 하고, 이것을 두 자씩의 간지(干支)로 쓴 여덟 글자를 사주팔자라고 하는데, 이것을 적은 사주단자를 신부집에 보내는 것이 첫 번째 절차이다.
사성은 가로 40cm 세로 30cm 정도의 흰색 간지(簡紙)를 다섯 칸으로 접어서 둘째 칸에는 본관과 이름을 적고 셋째 칸에는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간지로 바꿔서 적은 다음, 넷째 칸에 음력 생월과 생일을 적는다.
봉투의 앞면에 사주(四柱) 또는 사성(四星)이라고 적고, 봉투 뒷면의 접힌 부분에는 근봉(謹封)이라고 적고 봉하지 않는다. 이것을 청홍겹으로 된 사주보에 싸는데, 신랑은 양(陽)이므로 양(陽)의 색인 홍색이 겉으로 나오도록 하여 근봉(謹封)이라 쓴 띠를 둘러 신부집으로 보낸다.
신부집에서는 사성지와 같은 크기의 한지를 다섯 칸으로 접어 둘째 칸에 신랑 신부 성명을 쓰고 가운데 칸에 택일한 혼인일시를 쓴 다음, 넷째 칸에 함 보내는 날을 적는다. 봉투에 넣고 청홍겹보로 싸는데 신부집에서 보낼 때에는 음(陰)의 색인 청색이 겉으로 나오도록 한다.
2. 함은 어떻게 주고 받는가?
함은 혼인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신랑집에서 혼례일 며칠 전이나 하루 전에 신부집으로 혼서(婚書)와 혼수(婚需)를 함에 넣어 보내는 것이다.
혼서는 예장(禮狀)이라고도 하는데 가로 72cm, 세로 36cm 정도의 흰색 간지를 세로로 아홉 칸 접어 양쪽 한 칸씩을 여백으로 남기고 가운데 일곱칸에 쫛쫛쫛님의 귀한 따님을 아들의 배필로 허락해주심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을 쓴다. 봉투는 봉하지 않으며 근봉이라 쓴 띠를 끼운다. 이 봉투를 홍색 또는 검은색 겹보자기에 싼 뒤 근봉을 끼워 함 속 맨 위에 놓거나, 함에 앞서서 따로 들고 간다.
혼서는 혼인서약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서이므로 함을 받기 전에 반드시 혼서지를 먼저 읽어 내용을 확인한 후 함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신부는 이 혼서지를 일생동안 장롱 깊이 간직했다가 죽은 후 관 속에 넣어간다고 할 정도로 소중히 여기는 것인데, 이는 예를 갖추어 정식으로 혼인했다는 증거이며. 여자로서 일부종사 했음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99년 생개협 조사 결과에 의하면, 결혼문화가 호화 사치스럽게 된 이유에 대해 남만큼 치러야 한다는 체면문화와 과시적인 사회풍조를 1, 2순위로 꼽았다. IMF 이후 이 체면과 과시 풍조는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으나, 사회계층간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이다.
주자(朱子)는 이 함 속에 넣는 예물에 대해 적어도 두 가지는 넣어야하고 많아도 열을 넘지 않는다.고 하여 예물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혼례에 지나침이 없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옛날 법도 있는 가문에서는 정성껏 한 가지씩 모아둔 옷감이며 노리개며 가락지 등의 예물을 차곡차곡 담아두었다가 자기 집의 식구가 된 뒤 적절한 때에 주었지 결코 미리 선물공세를 펴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과 같은 조선시대 선비들도 재물이 있어도 예에 지나침이 없고, 법도 있게 예를 실천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사마온공은 무릇 혼인을 의논하는 데는 먼저 남녀의 성행(性行)과 가법(家法)이 어떠한지를 살펴야 하며, 구차하게 부귀를 탐내서는 안된다. 혼인을 의논함에 있어 재물을 언급하는 사람과는 모두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사마온공의 이 말은 약혼에서부터 신혼 초기까지의 단계에서 예물이나 혼수로 인해 혼약이 깨어지거나 이혼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함 보낼 때
예물이 담긴 함을 보내는 이유는 선비는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듯이 규수 역시 예를 갖추지 않는 상대에게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혼인의 각 절차를 예에 맞게 엄숙하게 진행함으로써 젊은 부부가 장차 그들의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쉽게 대충대충 하거나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보내는 함인만큼 함을 지고 가는 함진아비는 가는 도중에 부정한 것을 봐서도 안되고 누구와 허튼 잡담을 하거나 뒷걸음질을 해서도 안되고 그저 앞만 보고 곧게 가야 한다. 하물며 함을 아무데나 내려놓는 등의 일은 특히 꺼려하는 일이므로 신랑아버지는 함을 지고 가는 사람에게 함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특별히 당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뜻이 담긴 함을 보내고 받을 때에는 양가에서 모두 붉은 팥을 넣은 찰시루떡을 쪄서 그 가는 길에 혹 있을지도 모르는 온갖 부정한 것을 멀리하고자 했고, 함 속의 주머니에도 붉은 팥과 부용향을 넣어 주위를 정화하고자 하는 기원을 나타냈다.
함을 지고 가는 함진애비는 아들 딸을 고루 낳고 화목하게 사는 사람을 보내는데, 신랑 친구 중에서 반듯한 사람을 택해 부탁을 하거나 신랑이 직접 가지고 가기도 한다. 간혹 신랑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흥정을 벌이며 함을 길에 내려놓고 함값을 더 내라고 실랭이를 벌이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풍경이고 친구로서나 젊은이들로서 부끄러운 모습이다.
함을 보낼 때에는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청색과 홍색의 비단을 보내는데 이는 음양이 갖추어졌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청색 채단은 홍색 간지에 싸서 청색 명주 타래실로 동심결을 맺고, 홍색 채단은 청색 간지에 싸서 홍색 명주 타래실로 동심결을 맺는다. 동심결(同心結)은 한마음(同心)으로 맺어진(結) 신혼부부의 앞에 펼쳐질 새로운 인생길이 막힘없이 술술 잘 풀리라는 의미로 실을 매듭짓지 않고 묶어 쉽게 풀 수 있도록 엮은 것이다.
그리고 홍색겹으로 된 함속보를 함 속 바닥에 펴고 땅을 상징하는 음(陰)의 청색 채단을 먼저 넣고 그 위에 하늘을 상징하는 양(陽)의 홍색 채단을 넣은 후 함속보를 싼다. 함속보 대신 함 바닥에 흰색이나 홍색 한지를 함의 길이와 같게 접어 깔고 청홍채단을 넣은 후 윗부분이 완전히 겹쳐지도록 덮어 싸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다섯 개의 오낭주머니를 넣기도 하는데, 주머니 속에는 붉은 팥과 은행, 씨 있는 목화송이, 노란 콩, 향 등을 넣어 함 속 네 귀퉁이와 가운데에 놓는다. 이들 내용물은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잡된 것을 물리쳐 주위를 정화시키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자손 번창하며 복되게 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가락지 한 쌍을 예물로 넣기도 한다.
홍색겹보로 함을 단단히 싸고 흰 무명으로 함띠를 만드는데, 함질 사람의 체형에 맞게 어깨띠를 조절한 후 나머지는 사슬뜨기를 한다. 이것 역시 동심결과 같이 첫 번째 고를 잡아당기면 저절로 술술 풀리도록 되어 있어 신혼부부의 앞날에 장애가 없도록 축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혼인 전날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채단과 예장을 보내는 일이나 그 물건을 봉채 또는 봉치라고 한다. 함을 보낼 때 신랑집에서는 봉치떡을 쪄서 시루째로 상에 올려 마루에 놓고, 혼수함을 떡시루 위에 올려놓았다가 함을 져 보낸다. 봉치떡은 찹쌀 두 켜 사이에 팥고물을 넉넉히 넣고 맨 위 가운데 밤을 박고 그 주위에 둥글게 대추 몇 개를 박아서 설지 않게 정성껏 찐다. 떡을 두 켜로 하는 이유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을 의미하며 찹쌀로만 하는 이유는 부부금슬이 찰떡처럼 좋으라는 뜻이다.
(2) 함 받을 때
신부집에서는 함이 도착할 때쯤, 대청에 돗자리를 깔고 소반에 붉은 보자기를 덮고 봉채 떡시루를 올려놓은 다음 붉은 보자기로 덮어 함 받을 자리를 마련한다. 함이 도착하면 신부아버지는 혼수함을 받아서 봉채 떡시루 위에 놓고 함을 열어서 먼저 맨 위에 있는 혼서지를 꺼내 읽고 난 후에 함을 안방으로 옮겨 신부어머니가 연다.
봉치 받고 시집간다는 옛말은 이렇게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시집간다는 것을 뜻한다.
봉치떡은 칼로 자르지 않는다. 떡 윗부분의 대추와 밤이 박힌 부분은 신부의 주발 뚜껑으로 떠서 신부의 밥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혼례 전날 밤에 신부가 먹게 하는데, 이는 아들을 낳고 자손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 모인 친척들이 모두 나누어 먹는데, 복이 새나가지 말라는 의미에서 문 밖으로 내보내어 이웃에게 돌리지는 않는다.
3. 바로 섭시다 - 신랑 신부의 위치가 뒤바뀐 혼례
전통혼례 중 사주와 함, 폐백 등의 형식은 지금도 대부분 남아 있으나 가장 많이 변화된 부분이 대례(大禮)인 혼인예식이다.
원래 초례(醮禮)란 신랑이나 신부가 집을 떠나기 전에 그 부모가 술을 한 잔 내리며 앞으로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있어서 주의할 점을 이르는 예였으나, 후에 뜻이 변하여 혼인예식을 일컫게 되었다. 초례청(醮禮廳)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초석, 초례석이란 원래 초녀석(醮女席)으로 색시의 부모가 딸이 떠나기 전에 단술을 한 잔 내리고 시댁에서의 몸가짐을 타이르는 자리였으나 후에 혼례석의 의미로 바뀌었다.
혼인 당일은 양가 모두 준비하느라 분주하여 부모와 미혼자녀 사이에 마지막 정을 나눌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리기 쉽다. 그러나 혼례 당일 아침은 신랑 신부에게 있어서 이제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는 중요한 시간이다. 신랑 신부는 집을 떠나기 전에 각자의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고 키워주신 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이때 부모님은 품안의 자식이 장성하여 배필을 맞이하는 데 대한 감회와 함께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당부의 말을 전한다.
현행혼례에서 예절의 기본에 가장 어긋나는 것은 예식장에서 신랑 신부의 서는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예절의 방위는 자연의 방위와 달라서 어느 곳에서든지 병풍 치고 돗자리를 깔면 병풍이 있는 곳을 북쪽으로 간주한다. 또한 북쪽을 존숭(尊崇)한 곳으로 여겨 어른이 계신 곳이 북쪽이 된다. 예식장에서는 바로 주례가 서 있는 곳이 북쪽인 셈이다.
이 때 주례를 기준으로 맞은 편인 하객이 있는 곳은 남쪽, 주례의 왼쪽은 동쪽, 오른쪽은 서쪽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음양의 이치에 따라 남자는 양의 방향인 동쪽에 서고 여자는 음의 방향인 서쪽에 서는 것이 옳다. 즉 주례의 왼쪽에 신랑이, 오른쪽에 신부가 서야 맞는 것이다. 남동여서(南東女西)니 남좌여우(男左女右)니 하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경우는 양의 세계인 이승을 떠나 음의 세계인 저승으로 갔기 때문에 반대가 된다. 이러한 이치에 의해 제사를 지낼 때 신위의 위치는 합설의 경우, 남자조상은 서쪽, 여자조상은 동쪽에 모시는 것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메와 갱의 위치도 산사람의 경우와 반대로 신위의 위치에서 볼 때 밥은 오른쪽, 국은 왼쪽에 놓는다. 그러나 제사를 모시는 후손들은 산사람의 방위기준에 의해 남자후손들은 동쪽, 여자후손들은 서쪽에 서서 절을 해야 한다.
현재 예식장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신랑 신부의 위치를 반대로 세워 죽은 사람의 방위에 따르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예식장에서 도우미들이 세워주는 대로 무조건 따라할 것이 아니라 바로 알고 스스로 바른 위치를 찾아야 한다.
4. 폐백례는 이렇게 하세요
원래의 폐백례 즉 현구고례(見舅姑禮)는 신부가 첫날밤을 지내고 신랑과 일심동체가 됨으로써 비로소 며느리가 되었으므로 며느리의 신분에서 혼례 다음날 아침에 시부모를 뵙는 예인데, 요즘은 혼례식 당일 혼례식장에 마련된 폐백실에서 예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1) 시부모와 신랑 신부의 위치
혼례식장의 경우와 같이 폐백례 때의 남녀 위치도 거의 뒤바뀐 채 예식이 진행되고 있다. TV 드라마나 유명인의 혼례 장면을 보더라도 대부분 잘못된 위치에서 예식을 행하고 있다. 바른 예절의 정립을 위해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폐백을 받을 때는, 시아버지의 오른쪽에 시어머니가 앉는다. 이 때에는 시부모님이 계신 자리가 북쪽이 되므로 시아버지는 동쪽, 시어머니는 서쪽에 앉은 셈이 된다. 시부모의 맞은편에 위치한 신랑신부 역시 신랑은 동쪽, 신부는 서쪽에 서서 절을 올린다. 즉, 시아버지 앞에는 신랑이, 시어머니 앞에는 신부가 서 있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신랑 신부가 함께 시부모에게 폐백을 올리는 것은 현대에 와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형식이고, 폐백의 원래 의미대로 하자면 신부가 첫날밤을 지낸 후 며느리로서 시부모에게 첫인사를 올리는 예이므로 신랑은 새삼 자기 부모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절을 올릴 때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조금 옆에 서 있는다.
집안 식구 중 시부모보다 젊은 사람들은 시부모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늘어서는데 남자들은 시아버지가 앉아있는 동쪽에, 여자들은 시어머니가 앉아있는 서쪽에 선다.
(2) 폐백 음식
『예기』에 의하면, 신부는 폐백을 넣은 대나무 상자를 가지고 대추와 밤과 단수(段脩)로 시부모를 뵙는다. 단수는 고기를 얇고 길게 저며 생강과 계피를 넣어 두드려 말린 육포를 말한다.
시아버지에게는 대추와 밤을 드리고 시어머니에게는 단수를 드린다. 그것을 각기 네 귀에 술이 달린 보자기로 싸고 네 귀를 모아 근봉이라 쓴 종이를 끼운다. 겉보는 한 변이 1미터쯤되는 큰 다홍색 비단보자기인데 네 귀에 금전지를 붙이고 대추·밤과 육포를 싼 속보자기 둘을 한꺼번에 싸가지고 와서는 소반을 덮는 보자기로 쓰기도 한다.
폐백을 놓기 위한 상은 각각 하나씩 앞에 놓는 것이 원칙이나 편의상 큰 상 하나를 써도 된다. 상 위를 홍색 비단 보자기로 덮는다.
신부를 대신해서 돕는 이가 대추와 밤을 담은 그릇을 시아버지 앞에 놓으면 시아버지는 이를 어루만지며 새 식구를 맞이한 데 대한 기쁨을 표시한다. 신부는 조금 물러서서 사배(四拜)를 드린다.
다시 신부를 대신해서 돕는 이가 육포 담은 그릇을 시어머니 앞에 놓으면 시어머니는 폐백 그릇의 육포 위를 몇 번 두드리며 어루만진다. 이는 시어머니가 장차 며느리를 자식처럼 여기며 그 흉허물을 부모로서 덮어 감싸겠다는 표시이다. 신부는 조금 물러서서 역시 사배(四拜)를 올린다.
절을 마친 신부가 자리에 앉으면 시아버지가 대추와 밤 몇 알을 신부에게 건네주며 아들 딸 잘 낳으라는 덕담(德談)을 내려준다.
대추로 선물하는 것은 신선스런 대추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고, 새 며느리가 아들 낳기를 원해서이다.
(3) 대상에 따른 폐백절의 순서와 횟수
현구고례(見舅姑禮)는 글자 그대로 신부가 이제 신랑과 부부의 연을 맺어 한몸이 되었으므로 며느리의 자격으로서 구(舅)와 고(姑) 즉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알현(謁見)하는 예(禮)이다.
따라서 제일 먼저 시부모님께 절을 올리는 것이 순서이다. 이때의 절의 횟수는 신부는 4배, 신랑은 2배이다.
절의 횟수 역시 음양의 원리에 의해 양(陽)인 남자는 최소양수인 1배, 음(陰)인 여자는 최소음수인 2배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혼례나 수연례와 같은 큰 행사 때에는 기본횟수의 두 배인 남자 2배, 여자 4배를 한다. 이는 음양의 원리에 따른 것일 뿐 남존여비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 시조부모가 계시다 해도 먼저 시부모님께 예를 올린 후, 다음 순서로 시조부모께 예를 올린다. 촌수로 원근을 따질 때 부부는 한몸이라 촌수를 따질 수 없고 부자간은 1촌인데 조부모와 손주 사이는 형제와 같은 2촌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시집 식구와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는 상호례를 행한다.
이때 신부는 시집 식구와 친척 가운데 손위 항렬의 연장자에게는 평절 한 번씩을 한다.
상대가 항렬이 높더라도 나이가 같거나 아래이면 맞절을 한다. 이 때에도 나이가 비슷할 때에는 앉은 채로 반배를 하여 받고, 나이가 대여섯살 이상 아래일 때에는 함께 일어나 제대로 맞절을 한다.
그리고 시동생이나 시누이는 항렬이 같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정식으로 맞절을 한다.
시아주버니나 손윗 동서와도 정식으로 맞절을 하며 인사를 나눈다.
(4) 신랑의 처가에 대한 폐백례
전통혼례에서는 신랑이 대례(大禮)를 치른 다음날 처가 가서 장인 장모를 뵙는 것을 두 번째 간다하여 재행(再行)이라 한다.
이때 친척이나 마을 청년들이 한데 모여 신랑의 발목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때리는 동상례(東床禮)라고 하는 신랑 다루기를 하는데 혼인에 의해 인척(姻戚)으로 맺어진 데 따른 일종의 통과의례이다. 이 때 신부측에서는 술과 음식을 넉넉히 차려 이들을 대접하며 새신랑과 친척들이 서로 친밀하게 정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다.
요즈음도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랑 신부가 처가(妻家)로 먼저 가서 장인 장모께 선물을 드리고 하룻밤을 지내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재행의 의미이다.
이 때 사위가 장인 장모께 폐백을 드리는 방식은 며느리가 시부모께 드리는 방식과 같은데, 일단 사위가 혼자 절을 올리고 폐백을 드리는 예를 행한 후 딸은 따로 절을 해야 한다. 다만 며느리가 시부모께 드리는 대추, 밤, 육포 등의 폐백처럼 물목 즉 선물의 품목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선물은 임의대로 준비하고 대개 술을 함께 쓴다.
사위가 술을 따라 올리면 장인은 이를 받아 마신다. 딸은 이러한 예가 끝날 때까지 서 있다가 부친께 절하고 뵙는 것이 예이다. 사위가 장모에게 절을 할 때 장모도 맞절을 하는데 대개는 장모가 앉아서 반절로 받으며, 일어났다 앉으면서 맞절을 하지는 않는다. 장인 장모를 뵙고 난 사위는 이어서 처가의 여러 친척들에게 장유유서의 원칙에 따라 상호례를 나눈다. 이것이 신랑의 처가에 대한 폐백례이다.
요즘 신부만 시댁 어른께 폐백을 올리는 것은 불공평하니 혼례 당일 신랑도 처가 어른들께 폐백을 함께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으나, 혼례 당일 시간에 쫓겨가며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예를 올리는 것보다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처가에 가서 인사를 올릴 때 정식으로 폐백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이바지 음식 - 정성이 중요하죠
이바지란 정성을 다해 공들여 만든 음식을 보내주는 일 또는 그 음식을 뜻한다. 신랑 신부가 재행(再行)을 왔다가 돌아갈 때 신부집에서는 상수(床需)라고 하는 이바지 음식을 신랑 집에 보낸다. 이 음식을 보낼 때는 신부의 어머니가 안사돈인 신랑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음식의 물목과 함께 보낸다.
이 편지를 속칭 사돈지라 한다. 이 상수와 사돈지로써 신부의 친정어머니는 음식 솜씨와 집안 범절을 드러내고 이로써 사돈네 집안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신부의 친정어머니 솜씨로 직접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업적인 전문업체에 맡겨 해결하다보니 정성으로 만든 개성적인 음식과 맛보다는 이바지 음식의 종류와 맛이 가격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성을 보이고 예를 차릴 수 있는 한 방법으로, 친정 어머니의 솜씨를 보일 수 있는 음식 한두 가지, 예를 들어 김치나 밑반찬 한 가지라도 직접 만들어 함께 싸 보낸다면 남다른 사돈 간의 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혼례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숙한 두 남녀가 가족,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정한 의식을 통해 서로의 배우자로서 성심을 다할 것을 서약하는 예식이다. 이로써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미숙한, 몸만 어른인 상태에서는 새롭게 주어지는 책무를 감당하기 어려워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혼례절차 속에는 번거롭다고 해서 함부로 생략해서는 안될 중요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고, 그 과정들은 앞으로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대만 입법원은 2003년 1월, 결혼적령기의 남녀에게 행복한 가정 만들기교육을 시키도록 하는 내용의 가정교육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이를 법으로 명문화하였다고 한다.
지자체가 주관하는 가정교육센터에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수진이 부모 자식의 역할, 남녀관계, 부부윤리, 가정재산관리교육 등을 가르치도록 규정한 이 가정교육법은, 매년 약 17만쌍이 결혼하는 반면 이혼하는 부부가 5만7천쌍에 달하는 대만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가정의 의미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제대로 아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제정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진다.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 꼭 필요한 결혼준비교실의 내용을 다양하게 구성하여, 정신적인 교육뿐만 아니라 결혼 후 당장 달라지는 삶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호칭문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태교, 신생아 양육 방법, 제사 지내는 법 등의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평생교육의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건강하고 바른 사회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도움이 되는 책들
1. 『예기』
2. 『의례』
3. 『광례람』
4. 신응순, 『성재집』
5. 정약용, 『여유당전서』 「가례작의」
6. 이재, 『증보사례편람』, 『현토주해사례편람』
7. 남상민, 『한국전통혼례』, 한국예절문화원, 1989
8. 조선일보사, 『사진으로 보는 가정의례』, 1990
9. 권광욱, 『육례이야기』제1권, 해돋이, 1996
10. 장철수, 『한국의 관혼상제』, 집문당, 1997
11. 임민혁 옮김, 『주자가례』, 예문서원, 1999
12.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우리의 전통예절』, 1999
13. 문옥표 외, 『조선시대 관혼상제(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14. 이정우 외, 『생활문화와 예절』, 숙명여자대학교 출판부, 2000
15.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전통가례』, 2000
자료협조 : 생활개혁실천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