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국이중
기사입력 : 2008년 06월 11일
기사입력 : 2008년 06월 11일
조선 선조 임금 때 역관 중에 홍순언 이란 사람이 있었다. 역관이란 중인 계급의 통역을 담당하는 신분으로, 신분 계급의 제도가 분명했던 조선 시대에는 천대받던 직업군 중 의 하나였다. 당시 중국 명나라에 사신이 왕래 할 때 통역의 신분으로 동행 하면서 본래 임무 외에 무역을 함으로써 적지 않은 재물들을 모으곤 하였다.
홍순언이 명나라에 가서 임무를 끝내고, 조선에 돌아와 팔안경을 구경 하던 중에 홍등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어느 기루에 아리따운 처자의 그림이 걸려있고, ‘이 처녀와 하루 밤을 보내는데 은자 천 냥’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당시 은자 천 냥이면 말 열 필을 살 수 있는 거금 이었던바 호기심이 발동한 그가 기루에 들러 어찌된 사연인지 알아보았다. 사연인 즉 호부시랑[행자부 차관에 해당하는 관직]을 지낸 명문가의 규수가 억울한 모함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돈을 마련 하고자 하는 기가 막힌 사연이었다. 여인을 만나보니 천하절색이기도 하려니와 귀태 나는 정숙한 처자였다.
선뜻 천 냥이란 거금을 지불한 그는 그 처자를 불러들여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하고 손끝 하나 건들지 아니하고 돌려보냈다. 객지에서 거금을 들여 취한 여인 이었으나 그 사연이 너무 기구하고 그 뜻이 갸륵한 것이기에 호색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리했던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을 파견하게 되었고 홍순언은 통역의 임무로 따라가게 되었다. 사신 일행이 국경을 넘는 순간 난데없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레가 사신 일행을 막아서고 홍순언 역관을 찾아 태우더니 쏜살같이 내달아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차 대접을 받고 있는 중에 어느 귀부인이 나타나 홍 역관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데, 보니 여러 해 전 구해 주었던 그 처자가 아닌가?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그때 그 돈으로 하여 아버지는 구명되었고 그 처자는 당시 병부상서[국방부 장관]의 아내가 되었다. 그 부인은 물론 그 남편에게 까지 백배 사례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음은 물론이요, 병부상서는 황제에게 신속한 구원군 파병을 상주하여 5만 대군이 파병, 조선은 그 참혹한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치게 되었다.
병부상서로부터 큰 재물을 보은으로 받은 그는 큰 부자가 되었음은 물론 선조 임금은 일개 역관의 신분인 홍순언에게 ‘당릉부원군’이란 작호를 내려 공을 기렸다.
이 이야기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실화이다. 조건 없는 베품이 한 개인의 입신양명은 물론 한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꾼 보은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뉘라고 자신의 재물이 소중하지 아니 했겠는가 마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순수성과 측은지심 앞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아니한 그 행위는 범인으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외국과 달리 부자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모리배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급격히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정비되지 못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졸부가 양산되고, 나쁜 짓으로 돈을 벌게 되다보니 재물의 소유에 인격이 따라가지 못하고 빈자를 멸시하며, 사람마저 물건 취급을 하고, 오만가지 나쁜 꾀가 마치 지혜로운 일인 양 착각 하면서 더 많은 재물의 소유를 위해서 빈자들을 착취하고 권모술수를 부려대며, 그 시커먼 내면세계를 그럴 듯한 포장으로 감추고 고상하고 거룩한 척 으스대는 행위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고로 해서 전통과 원칙이 정비된 선진국과 다르게 부자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욕을 먹는 풍토가 심화된 것이리라.
우리 옛 속담에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새 개 같이 벌다보니 인격이 개[犬]격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런가?
치부[致富]를 위해서라면 문둥이 콧구멍에 마늘쪽도 빼어 먹는 파렴치한 행위조차도 수완이라 착각하는 병폐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부자가 존경 받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며, 소득분배의 개선이나 사회통합도 또한 꿈이라 할 것이다.
극심한 불황과 원자재 값 앙등,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제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등이 우리 귀금속 산업과 그 구성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때 일수록 ‘노블리스 오블리제’ 의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할 것이다. 하나의 업종이나 집단 속에서 더 많이 성취하고 소유한 이들의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는 난세라 할 것이다.
영국 왕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 받으며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포클랜드 전쟁에 왕자가 소총을 들고 참전하는 역할과 책임에 충실한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난세를 헤쳐 갈 힘이 어디로부터 비롯될 것인가? 우리 모두의 지혜와 역량이 결집되어야만 하리라. 이 와중에서도 작은 개인의 이익에 탐닉하여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지 아니 한다면 그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서 우리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올 것이다.
/ 본지 논설위원
전 서울귀금속가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제시카 대표
홍순언이 명나라에 가서 임무를 끝내고, 조선에 돌아와 팔안경을 구경 하던 중에 홍등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어느 기루에 아리따운 처자의 그림이 걸려있고, ‘이 처녀와 하루 밤을 보내는데 은자 천 냥’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당시 은자 천 냥이면 말 열 필을 살 수 있는 거금 이었던바 호기심이 발동한 그가 기루에 들러 어찌된 사연인지 알아보았다. 사연인 즉 호부시랑[행자부 차관에 해당하는 관직]을 지낸 명문가의 규수가 억울한 모함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돈을 마련 하고자 하는 기가 막힌 사연이었다. 여인을 만나보니 천하절색이기도 하려니와 귀태 나는 정숙한 처자였다.
선뜻 천 냥이란 거금을 지불한 그는 그 처자를 불러들여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하고 손끝 하나 건들지 아니하고 돌려보냈다. 객지에서 거금을 들여 취한 여인 이었으나 그 사연이 너무 기구하고 그 뜻이 갸륵한 것이기에 호색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리했던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 패전을 거듭하던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는 사신을 파견하게 되었고 홍순언은 통역의 임무로 따라가게 되었다. 사신 일행이 국경을 넘는 순간 난데없이 화려하기 그지없는 수레가 사신 일행을 막아서고 홍순언 역관을 찾아 태우더니 쏜살같이 내달아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차 대접을 받고 있는 중에 어느 귀부인이 나타나 홍 역관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데, 보니 여러 해 전 구해 주었던 그 처자가 아닌가?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그때 그 돈으로 하여 아버지는 구명되었고 그 처자는 당시 병부상서[국방부 장관]의 아내가 되었다. 그 부인은 물론 그 남편에게 까지 백배 사례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음은 물론이요, 병부상서는 황제에게 신속한 구원군 파병을 상주하여 5만 대군이 파병, 조선은 그 참혹한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치게 되었다.
병부상서로부터 큰 재물을 보은으로 받은 그는 큰 부자가 되었음은 물론 선조 임금은 일개 역관의 신분인 홍순언에게 ‘당릉부원군’이란 작호를 내려 공을 기렸다.
이 이야기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실화이다. 조건 없는 베품이 한 개인의 입신양명은 물론 한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꾼 보은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뉘라고 자신의 재물이 소중하지 아니 했겠는가 마는 안타까운 지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순수성과 측은지심 앞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아니한 그 행위는 범인으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외국과 달리 부자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모리배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가 급격히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정비되지 못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졸부가 양산되고, 나쁜 짓으로 돈을 벌게 되다보니 재물의 소유에 인격이 따라가지 못하고 빈자를 멸시하며, 사람마저 물건 취급을 하고, 오만가지 나쁜 꾀가 마치 지혜로운 일인 양 착각 하면서 더 많은 재물의 소유를 위해서 빈자들을 착취하고 권모술수를 부려대며, 그 시커먼 내면세계를 그럴 듯한 포장으로 감추고 고상하고 거룩한 척 으스대는 행위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고로 해서 전통과 원칙이 정비된 선진국과 다르게 부자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욕을 먹는 풍토가 심화된 것이리라.
우리 옛 속담에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새 개 같이 벌다보니 인격이 개[犬]격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런가?
치부[致富]를 위해서라면 문둥이 콧구멍에 마늘쪽도 빼어 먹는 파렴치한 행위조차도 수완이라 착각하는 병폐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부자가 존경 받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며, 소득분배의 개선이나 사회통합도 또한 꿈이라 할 것이다.
극심한 불황과 원자재 값 앙등,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제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등이 우리 귀금속 산업과 그 구성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때 일수록 ‘노블리스 오블리제’ 의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할 것이다. 하나의 업종이나 집단 속에서 더 많이 성취하고 소유한 이들의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는 난세라 할 것이다.
영국 왕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 받으며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포클랜드 전쟁에 왕자가 소총을 들고 참전하는 역할과 책임에 충실한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난세를 헤쳐 갈 힘이 어디로부터 비롯될 것인가? 우리 모두의 지혜와 역량이 결집되어야만 하리라. 이 와중에서도 작은 개인의 이익에 탐닉하여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지 아니 한다면 그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서 우리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올 것이다.
/ 본지 논설위원
전 서울귀금속가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제시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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