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재
기사입력 : 2008년 06월 26일
기사입력 : 2008년 06월 26일
1885년 일본과 중국은 천진에서 조약을 맺었는데 주 내용은 조선에 어느 한 나라가 출병하면 함께 출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조선을 병탄하고자 하는 일본의 위계에서 나온 것이었다. 1894년 전북 고부에서 조병갑의 폭정으로 시작된 동학 난은 충주를 지나 한양으로 동학군이 올라오자 다급해진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원병을 청하고 청병은 아산에 상륙하여 동학군을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이에 질세라 인천에 함대를 상륙시켰고 조선 땅에서 청군과 교전하였는데 이것이 청일전쟁의 시작이다. 남의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하였으니 결단 난 것은 우리 조선 백성이요, 국토일 수밖에 없었다. 약소국의 비애가 이런 것이다.
1894년 7월 25일 오전 7시경 우리나라 황해에서 중국 전함 추엔호와 관궁호 2척이 일본전함 요시노호, 나니와호, 아키시마호 3척과 교전하였는데 결국 일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청나라 함선의 포탄의 반은 화약이 없었는데 이는 청나라 조정의 부패와 서태후의 이화원 작업에 군비를 빼돌린 탓이었다. 이를 덕적도의 풍도 앞바다 이름을 따서 풍도(豊島)해전이라고 한다. 이때 공교롭게도 청나라가 영국으로부터 빌린 화물선 고승호(高陞號, 영국 원명은 SS Kowshing)는 청병 936명, 말굽은(馬蹄銀), 당시 국제 통화이던 멕시코 은화 등 현재 시가 1,000억 원 상당을 싣고 아산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승호는 길이 72.6m, 무게 2,134t 인데 일본 순양함 나니와호가 풍도 해전을 이기고 돌아가던 중 이 배를 발견하고 고승호를 납치하여 일본으로 끌고 가려 하였다. 그러나 청병이 격렬히 저항함으로 어뢰를 발사하여 7월 25일 15시경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율도 남서쪽 약 2km 앞바다에 침몰시켰다. 악랄한 일본군은 영국인 선원만 구제하고 청병은 그대로 수장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청일 전쟁은 결국 북경 근처까지 진격한 일본의 위세에 눌려 서태후가 항복하고 청국이 조선을 속국에서 배제하기로 하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여 끝을 맺었다. 이 고승호에 실린 은괴 등은 청병의 조선 주둔군 군자금이었는데 이를 확인한 일본은 1925년부터 1940년까지 이 배를 수차례 인양하고자 하였으나 기술 부족으로 실패하였다. 이런 사실은 1935년 2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바 있다.
그 후 1979년 6월 15일 청주에 거주하는 오승환이라는 사람이 인천 항만청에 고승호 매장물 발굴 신청을 하였는데, 오 씨는 당시 이행보증금 1백만 원을 납부하고 약 3개월간 인양작업을 하였지만 겨우 철제앵글 몇 개와 납덩어리 2kg 정도만 인양하였을 뿐이다. 그러다 2000년 7월 31일 골드쉽 주식회사가 고승호로 추정되는 배로부터 은화 및 은괴 각 6점, 은수저 7점, 소총 그리고 구리주전자 같은 몇 가지 유물을 인양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당시는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 외환위기 시절이라 금, 은괴만 발굴한다면 무조건 주가가 뛰고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던 때였다. 이 회사는 2001년 1월 인천 지방 해양수산청에서 정식 발굴승인을 얻어 3차례 더 탐사작업을 벌였는데 1차 때와 같이 소총, 도자기, 파편, 동전류 등 620여점의 유물을 건졌지만 은괴는 발견하지 못 하고 문화재청에서 고승호 침몰시대의 것으로 고증을 얻은 바 있다.
아직껏 선체는 물론 좀 더 가치 있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엉뚱한 데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예상되는 논란의 하나는 침몰선박이 실제로 고승호라 한다면 이 유물의 소유권은 누구의 것이냐 하는 데에 있다. 문화재라면 국유화가 원칙이지만 발굴된 매장물이 문화재적 가치가 없을 때는 ‘국유재산의 매장된 물건의 발굴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매장물 추정가액 일부를 지급받고 매장물을 국고에 귀속시키게 된다. 만일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된다하면 이때는 문화재 보호법 적용을 받아 문화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상이 결정된다.
어느 해양법에 밝은 법학자는 고승호가 실제로 인양되면 거기에 실린 은괴와 매장물은 한국 측이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추정한다. 패전국의 군함은 침몰 수역에 관계없이 승전국의 항복을 받아 전리품으로 선언했으면 승전국이 소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패전국 소유라는 게 해양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청일전쟁 당사자가 아닌 우리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남미 연안에는 스페인 군함 등 600여척의 침몰선박이 있지만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고승호가 영국 소유의 수송선으로 당시 청나라에 임대한 상태였지만 군인이 탑승했고 포를 장착한 이상 군함으로 봐야한다는 사람도 있고 고승호가 단순히 군자금 및 병력수송만 했으므로 군함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은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잘못하면 고승호 때문에 한, 중, 일 세 나라에 외교적 분쟁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 (사)한국귀금속보석감정원 회장
(태극 마크 감정원)
1894년 7월 25일 오전 7시경 우리나라 황해에서 중국 전함 추엔호와 관궁호 2척이 일본전함 요시노호, 나니와호, 아키시마호 3척과 교전하였는데 결국 일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 청나라 함선의 포탄의 반은 화약이 없었는데 이는 청나라 조정의 부패와 서태후의 이화원 작업에 군비를 빼돌린 탓이었다. 이를 덕적도의 풍도 앞바다 이름을 따서 풍도(豊島)해전이라고 한다. 이때 공교롭게도 청나라가 영국으로부터 빌린 화물선 고승호(高陞號, 영국 원명은 SS Kowshing)는 청병 936명, 말굽은(馬蹄銀), 당시 국제 통화이던 멕시코 은화 등 현재 시가 1,000억 원 상당을 싣고 아산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승호는 길이 72.6m, 무게 2,134t 인데 일본 순양함 나니와호가 풍도 해전을 이기고 돌아가던 중 이 배를 발견하고 고승호를 납치하여 일본으로 끌고 가려 하였다. 그러나 청병이 격렬히 저항함으로 어뢰를 발사하여 7월 25일 15시경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율도 남서쪽 약 2km 앞바다에 침몰시켰다. 악랄한 일본군은 영국인 선원만 구제하고 청병은 그대로 수장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청일 전쟁은 결국 북경 근처까지 진격한 일본의 위세에 눌려 서태후가 항복하고 청국이 조선을 속국에서 배제하기로 하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여 끝을 맺었다. 이 고승호에 실린 은괴 등은 청병의 조선 주둔군 군자금이었는데 이를 확인한 일본은 1925년부터 1940년까지 이 배를 수차례 인양하고자 하였으나 기술 부족으로 실패하였다. 이런 사실은 1935년 2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바 있다.
그 후 1979년 6월 15일 청주에 거주하는 오승환이라는 사람이 인천 항만청에 고승호 매장물 발굴 신청을 하였는데, 오 씨는 당시 이행보증금 1백만 원을 납부하고 약 3개월간 인양작업을 하였지만 겨우 철제앵글 몇 개와 납덩어리 2kg 정도만 인양하였을 뿐이다. 그러다 2000년 7월 31일 골드쉽 주식회사가 고승호로 추정되는 배로부터 은화 및 은괴 각 6점, 은수저 7점, 소총 그리고 구리주전자 같은 몇 가지 유물을 인양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당시는 한 푼의 달러가 아쉬운 외환위기 시절이라 금, 은괴만 발굴한다면 무조건 주가가 뛰고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던 때였다. 이 회사는 2001년 1월 인천 지방 해양수산청에서 정식 발굴승인을 얻어 3차례 더 탐사작업을 벌였는데 1차 때와 같이 소총, 도자기, 파편, 동전류 등 620여점의 유물을 건졌지만 은괴는 발견하지 못 하고 문화재청에서 고승호 침몰시대의 것으로 고증을 얻은 바 있다.
아직껏 선체는 물론 좀 더 가치 있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엉뚱한 데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예상되는 논란의 하나는 침몰선박이 실제로 고승호라 한다면 이 유물의 소유권은 누구의 것이냐 하는 데에 있다. 문화재라면 국유화가 원칙이지만 발굴된 매장물이 문화재적 가치가 없을 때는 ‘국유재산의 매장된 물건의 발굴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매장물 추정가액 일부를 지급받고 매장물을 국고에 귀속시키게 된다. 만일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된다하면 이때는 문화재 보호법 적용을 받아 문화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상이 결정된다.
어느 해양법에 밝은 법학자는 고승호가 실제로 인양되면 거기에 실린 은괴와 매장물은 한국 측이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추정한다. 패전국의 군함은 침몰 수역에 관계없이 승전국의 항복을 받아 전리품으로 선언했으면 승전국이 소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패전국 소유라는 게 해양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한다. 따라서 청일전쟁 당사자가 아닌 우리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남미 연안에는 스페인 군함 등 600여척의 침몰선박이 있지만 이 원칙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고승호가 영국 소유의 수송선으로 당시 청나라에 임대한 상태였지만 군인이 탑승했고 포를 장착한 이상 군함으로 봐야한다는 사람도 있고 고승호가 단순히 군자금 및 병력수송만 했으므로 군함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은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잘못하면 고승호 때문에 한, 중, 일 세 나라에 외교적 분쟁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 (사)한국귀금속보석감정원 회장
(태극 마크 감정원)